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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엄마

by 코디브라이트 2019. 2. 16.

홍대에서 갑자기 3시간 정도 할 일이 없어지고, 심지어 핸드폰 배터리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이쇼핑도 끌리지 않고 아무것도 끌리지 않았다.

추운 거리에서 걷다가 문득 누나가 샀다 환불하려는 원피스(옷은 이쁘지만 환불)를 엄마가 입어봤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마를 제지했고,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네가 엄마 원피스 하나 사와."라고 하셨다.

이참에 엄마 옷을 하나 골라볼까 싶었다. 갑자기 의지에 불타 머리를 굴려보고는 미쏘 매장에 들어갔다.
엄마의 머리 스타일, 피부색, 얼굴 그리고 분위기를 상상해보며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찾아다녔다.
엄마에게 어울리면서 고급스러우면서 젊어 보이고 이쁘고 트렌드하여야 한다.

결국 원피스가 아닌 하얀색 레이스가 있는 블라우스와 검은색 포인트 버튼 가디건을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엄마가 원피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 미안해)

집에 돌아와 만족해하는 엄마를 보며 뿌듯한 시간을 보내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었다.

순간 주스가 마시고 싶어 방을 나와 부엌에 가서는 컵을 쓰려는데, 컵이 없었다.
그래서 찬장을 열어보니 쓰지 않는 수많은 컵이 있었다.

사실 위 사진의 컵들 말고도 한 2배 가까이 컵이 집에 존재한다. 접시는 더 많이 있다.
예전에는 이과라 그런지 쓰지도 않는 것이 집에 있는 것이 참 뭔가 찝찝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릇을 아끼거나 예쁜 그릇을 모으시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엄마가 흘리며 말한 "이 정도면 주부 20년치고 그릇이 많은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신 게 떠올랐다.
이게 많지 않다니 무슨 말이지. 사실은 엄마도 내가 이름표를 모으듯 그릇을 모으고 계셨던 것 같다.

어쩌면 집안 곳곳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물건 혹은 취미 혹은 추억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오늘 옷을 사드리면서 엄마가 상의를 하의 안으로 넣어 입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찬장을 열어보면서 나중에 그릇도 엄마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엄마를 많이 모르는 것 같다. 집안에 숨겨진 엄마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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