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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길들여진 족발

by 코디브라이트 2019. 1. 20.

언젠가부터 배달의 민족을 쓰고 있다. 그 이후론 식당을 정하기보다, 메뉴를 정하고 배민에게 식당을 묻는 것 같다. 겉보기에 편리해진 일일 수 있지만, 최종 판단의 키를 약간 뺏겨 어쩌면 더 의존적인 선택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은 인천 집에 왔다. 독감에 걸리신 어머니를 위해 저녁 식사 준비를 생략하고 족발을 시켜 먹기로 했다. 항상 시켜 먹던 '최가족발'이 있지만, 초심을 잃었다는 가족피셜 평가로 다른 족발집을 찾고 있었다. 문득 배민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꼭 아픈 어머니와 MSG 극구 사절 및 배달음식 반대파 아버지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꼼꼼히 리뷰를 살펴보며 가장 적합한 반찬 조합인 음식점을 택했다.

일단 작은쟁반비빔국수를 추가시켰는데, 족발 세트에 비슷한 비빔국수가 이미 포함되어있어 부모님께 한소리를 들었다. 살짝 긴장한 채 쟁반비빔국수 한 입 먹었다. 맛있었다. 부모님도 맛있다 말씀하셨다. 안도감과 함께 즐겁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처음 그 정도였다. 먹는 동안 아버지의 표정은 안 좋기 시작하고 어머니는 잘 드시지만, 항상 포커페이스기 때문에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그냥 맛있게 드시는 듯했다.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 배가 불러 젓가락을 놓고 있었다.

그 순간 생마늘을 먹는데 문득 이질감을 크게 느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어려서부터 완벽한 주부였던 어머니 덕에 맛있는 집밥을 항상 먹을 수 있었다. 집밥은 재료부터 사 먹는 것과 다르다. 규모의 경제가 모든 부분에서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이익을 위해 필수인 배달 음식과 선택인 집밥은 다르다. 그래서 문득 마늘을 먹었을 때 이질감을 느꼈던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내가 더 맛있는 배달 음식점을 찾는 것은 애초에 모순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돈 주고 사 먹는 거라 배불리 싹싹 다 먹을 생각으로 시키지만, 항상 남기는 것에 속상해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우리 엄마 집밥 클래스에 이미 길들여져 있었고 애초에 재료부터 다른 배달음식에는 찾을 수 없는 맛이었다. 배달 음식을 만드시는 분의 요리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재료만큼은 이마트 농수산물이 애초에 더 뛰어나 사실 배달음식으로 최상의 맛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최근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 하나인 "맛집을 찾으려면 땅값 싼 지역으로 가라"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물론 집에서 잘 해 먹지 못하는 치킨, 피자, 탕수육은 배달 음식이 최고다. 그 음식들에 나는 길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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