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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를 읽고

by 코디브라이트 2021. 6. 14.

레몬 얼그레이티 ICE

책을 읽기 전,

유투브에서 '정치적 올바름: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의 이상한 결합'을 주제로 한 조던 피터슨의 강연 영상을 보고, 왜 이상한 결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애초에 '정치적 올바름'이란 단어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같은 정치적 입장 혹은 의견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내 생각은 어떤지 고민하고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 특히, 여성학,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렇다. 내가 가진 생각들 중 잘못된 것은 없는지 내가 아무런 근거없이 얕은 생각을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상태이다. 그렇기에 하나씩 차츰차츰 정리해보고 싶었다.

궁금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는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자아/정체성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껴왔다. 선명해진다는 것은 모든 행동들에 합리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샤워를 할 때 샴푸를 먼저하는 이유, 트리트먼트를 헹굴 때 최대한 하수구 근처로 튀지 않게 헹구는 이유, 그닥 덥지 않다면 에어컨 송풍을 트는 이유, 여름이 다가오면 몸의 적응을 위해 더위를 만끽하는 이유 등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생활 방식 혹은 의견에 있어서 부딪히는 상황이 존재한다. 서로 합리적인 근거들로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르고 싶은데, 결국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물론 나도 그저 느낌적인 확신만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의견을 떠올려 펼치다 결국 후회하는 것이다.

또한 정답적인 행동이나 의견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드리고 싶다. 이를 위해 내 생각과 행동부터 깊이 고민해보고 합리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대화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빠르고 깊이 이해하여 충돌하지 않고 현명하게 합의의 이르도록 이끌고 싶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세상에 많지만, 영원히 고민해보려고 한다.

이 책은 그 고민의 연장선인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저자 조던 피터슨에 끌렸던 이유는 그가 말한 "니 방부터 제대로 정리해라." 때문이다. 자기 방도 제대로 못 치우고 하루가 게으름으로 가득하면서 빈부 격차, 아프리카 내 빈곤 문제들을 고민만 하는 현재의 나 자신을 바꿔보고 싶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매일의 게으름에 대해 합리화가 아닌 올바른 생각과 자세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킬 단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소수자들을 차별, 배제하는 언어 사용 및 표현을 지양하자는 신념, 혹은 그에 기반한 사회운동. 흔히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 줄여 부른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은 단순한 언어순화 운동 차원을 넘어서, 영상이나 게임 등에서의 균등한 역할 배분, 혹은 진학이나 취업, 승진 등에서의 소수자 우대 정책 등으로 확장 적용되고 있다. 성별, 인종 등 여러 집단적 정체성이 합류하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이른바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 일체를 뜻한다. 하지만 이는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이며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있으며,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p11)

 

책은 네 명의 패널이 토론 전 인터뷰, 토론, 토론 후 인터뷰에 가담했던 대화를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다. 당황했던 점은 바로 토론 주제가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효용성, 영향 그리고 결과에 대한 주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보라 할 수 있는지란 주제만으로는 토론의 목적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다.

(이때 '진보인지 아닌지'를 '좌파인지 아닌지'로 오해했었다. 진보는 말그대로 더 나은 사회로의 진보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주로 궁금했던 점들은 아래와 같다.

  • 조던 피터슨이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의 이상한 결합의 의미
  •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 혹은 지표들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 배경과 주 쟁점 포인트

토론 전 인터뷰 정리, (p15 - 60)

스티븐 프라이 (반대)

  • PC에 반대하는 레토릭이 전적으로 우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신은 물렁한 좌파이다.
  • 정치적 올바름의 목적이 '다양성'을 기리기 위함이라면, 그 다양성은 의견의 다양성도 끌어안아야 한다.
  • 정치적 올바름은 별 효과가 없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좀더 관용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고매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단순히 어떤 용어나 언어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이 그 불편하고 멍청한 표현을 쓰도록 강제하는 건 핵심이 아니다.
  • 보통은 저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여기지곤 하죠. 사실 저는 그런 행동이 세상에서 가장 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치적 올바름은 그저 어느 한쪽 진영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다. 토론을 차단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수법이다.
  •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시간이 지나면서 전부 또는 일부라도 부패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이상이란 늘 숭고하기 마련이죠.
  • 저는 그것이 더 큰 포용과 더 많은 다양성을 지연시킨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속해야 할 더 커다란 대의가 필요하다.

조던 피터슨 (반대)

  • 저는 학생들을 하나로 연합시키려는 좌파의 신조가 비양심적이며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자의 신조입니다.
  • 우리 사회가 계층 구조를 만들어낼 때,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맨 밑바닥에 계속 쌓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만드는 것이 바로 계층 구조의 본질입니다. 이런 계층 구조에서 박탈당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좌파가 바로 그 역할을 하죠.
  • 그들은 본질적으로 집단 멤버십을 통해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철학과 동맹을 맺고, 현 상황만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서로 경쟁하는 집단들 간의 싸움터로 읽어냅니다.
  • 어떤 사회든 주류 세력이 특권을 가집니다. 그것 사회라는 조직이 의미하는 요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해당 시스템을 세팅하고, 그러고 나서 소수자 보호책을 만드는 겁니다.
  • 이게 바로 좌파의 행태 중 독소적인 부분입니다. 그저 모든 게 다 집단 정체성이에요.
  • 무엇보다 토론의 주제가 '권력'일 때 소름이 끼칩니다. 그 이유는 신마르크스주의와 연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조 일부가 '모든 것은 권력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계층 구조가 권력이 되는 순간은 오로지 독재로 변했을 때뿐입니다. 비교적으로 볼 때, 저는 서구를 특징짓는 근본적인 계층 구조가 독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저는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 . 그런데 결과의 평등은, 음...
  •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양극화된 정치 논쟁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에 낙담하게 됩니디. 그리고 모든 것이 정치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 그저 모든 것이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 심하게 다투는 게층 구조의 문제인 거죠.
  • 설마 그 모든 계층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통제하겠다는 건가요? 서구는 급진적인 개인주의자의 관점을 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이클 에릭 다이슨 (찬성)

  • 정치적 올바름은 좌파 진영에서 만들어냈어요. 발상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니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관념을 좌파가 고안해냈다고 봅니다. 개념은 좌파가 만들었지만, 이를 보수 우파가 중간에 가로채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가 나지만 그에 대해 더 이상 편협하게 굴 수 없는 것'이 곧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의미하게 된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많은 것이 올바르길 원합니다. 그런데 정치에는 정확한 측량법 같은 게 없어요. ... . 하지만 도움이 되는 점도 있어요. 비판적으로 자신을 보고, 여러 항목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자기 삶을 성찰하고, 잃어버린 도전 의식을 다시 찾는 것은 유익합니다.
  • 학교는 무엇보다 활력 넘치는 배움의 장입니다. 때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생각들에 맞서야만 하죠. 더 많이 발언해야 해요. 물론 어떤 발언은 혐오 행위로 연결되기로 하고, 그 자체로 악랄하고 혐오스러운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문제와 대면하는 것이 많은 경우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게 바로 백인 남성의 특권입니다. 그들이 가장 잘한 일은 바로 그 특권을 감추려 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인 남성이 특권을 가졌다는 것이 '모든' 백인 남성이 특권을 누린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남보다 먼저 출발하고 앞서 간다는 의미에요. ... . 그런데, 게임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는 역경은 어떤 건지 한 번 상상해보세요.
  • 역사를 찾아보면 인종을 발명해낸 것 백인들일 겁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문제의 중심에 인종을 두는 걸까요? 그렇게 해야 하기 떄문입니다. ... .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척할 수 없습니다. 백인은 말하자면 기본 위치에 있었습니다.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죠.
  • 지금까지는 어떤 특정 관행, 집단, 부족 정체성이 미국의 정체성이었습니다. ... . 그 후 비난 게임이 시작되자, 그 게임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해당 게임을 통제할 수 없다며 화를 내는 겁니다. 규칙이라는 걸 배우세요. 바로 당신이 만든 규칙 말입니다.
  • 인종은 백인이 만들어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셸 골드버그 (찬성)

  • 특히 조던 피터슨이 PC라고 부르는 것을 저는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은 여성, 성소수자, 젠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거나 고치려는 거의 모든 노력을 '자연 질서에 대한 PC의 공격'으로 보고 있습니다.
  • Q.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며 이를 실천하는 능력이 바로 서구 프로젝트의 핵심, 계몽주의의 요점이라는 주장이죠. 설사 그 과정에서 소외된 집단이 일부 해를 입게 되더라고 말입니다."
    A.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를 대치시키는 이분법은 기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집단을 차별하면, 그건 바로 개개인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하고 잠재력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능력을 방해하는 겁니다. 그때는 여성 개인이나 유색인종 개인이 누릴 권리도 없어질 겁니다. 저는 우리 측이야말로 계몽주의 진영이라고 생각해요.
  • 전통적인 구조에 신세지지 않으며 인간의 자유는 더욱 확대된다는 생각, 그게 바로 계몽주의예요. 사회 질서란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보호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피터슨의 작업에 흐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계몽주의와 더욱 불화한다고 봅니다.
  • 미국에서 정체성 정치가 비판받은 지점은 그것이 계급을 희생시켜 인종이나 젠더 문제를 부각시켜왔다는 것이었습니다.
  • '남자'가 직업을 잃는다. '남자'가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이런 것들은 아직까지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정말 새로운 현상이죠. 저는 거기에서 문화적 공포가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처벌받지 않는 문화가 이제는 끝났다는 공포요.
  • 솔직히 저는 여성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하고 있는 정도죠.
  • 저는 PC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일정 부분은 아마도 '더 나은 태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목에 뭔가 콱 박혀 있는 것 같은 거에요. 하지만 효과 있고 사회적 효용이 있는 것들은 완벽하게 언어에 통합될 것입니다.

토론 부분을 읽고 난 후,

찬성 진영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문제의 배경 및 현실에 대한 올바른/옳은 명제들을 나열하지만,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으로써 '정치적 올바름'이 어떤 결과적인 효용을 가져오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반대 진영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현 시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가져오는 역효과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토론이 하나의 논제에 대해 의견들이 오가기보다 자신의 입장 및 쟁점을 말하고 그 주제로 끌고 가려는 느낌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번 정리해본다.

반대자들이 크게 지적하는 부분이 두 가지이다.

  • PC로 간주하는 집단주의적 서사는 이상한 방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신마르크스주의를 모방했다. 그들의 근본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본질적으로 개인이 아니고 어떤 집단의 일원입니다.
  • 이 세상을 다른 힘을 가진 집단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터로 보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 실행하는 모든 행동은 당신이 속한 집단을 대표해 벌이는 파워 게임입니다.
  • 이제는 이 유해하고 이분법적이며 양측 모두 아무것도 얻을 것 없는 광기를 멈춰야 할 시간입니다.

이에 대해, 찬성자들은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저 대학 캠퍼스 내의 극렬 좌파 진영이나 트위터에서 지독하게 구는 사람들만을 위한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떤 특정 범주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끼워맞춰 분석하려 한다.
  • 현재 미국에서는 'PC를 극복한다'는 명복으로 사회의 진보를 휘퇴시키는 대대적인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 인종은 지배적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 정체성 정치는 우파가 말하는 혐오의 대상, 즉 '검은 야수로'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우파는 처음부터 흑인, 황인, 그 밖의 유색인종과 여성 그리고 성전환자들에게 정체성이라는 게 어느 정도로까지 떠넘겨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 전통적으로 우리 문화의 중심, 계급 구조 상층에 있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 능력과 야망을 실현시킬 권리를 가능한 많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한쪽은 어떤 집단이 포용되고 집단 정체성을 정의할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반면 다른 한쪽은 그런 집단이 소수집단 우대정책이나 여타의 결과 지향적 과정으로 인해 과도하게 특권을 누릴 때 위협이 된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반대자는 차별과 배타성을 바로잡기 위해 공통된 정체성을 근거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왜 치명적인지 묻는다. 그것이 정치가 아닌가.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모든 것, 가장 좋은 면이 아닌지 묻고 결론적으로 이것이 진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자는 집단으로써 같은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사고 방식과 행동 그리고 실질적인 대안들이 효용적이 않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토론에서는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 등의 사건들도 언급된다. 계속 인종과 젠더, 평등에 대해 이야기의 방향이 쏠린다. 정치적 올바름의 자세한 내면에 대해서는 점점 멀이지면서 말이다. 

(토론에 대해 읽어볼수록 보지 못했던 쟁점 포인트를 느껴 위 글을 계속 수정하다 일단 멈춘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나의 생각,

그동안 다수, 주류 권력에 의하여 억눌려온 소수자들의 정체성을 배려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할까? 아니면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해 좌파 이념이 극단으로 치달아 우리가 '결과적 평등'을 옹호하는 우를 범하게 되거나, 도리어 극우주의자들에게 땔감을 던져주는 셈이 되어버린걸까? (p144)

 

마지막 임명묵씨의 논평에서 토론자들의 각 입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사실 토론만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에서 충돌하는 쟁점을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논평을 통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두 입장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한 현상인지는 몰랐지만,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언어 지양 운동 및 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좀더 그들에게 공감하게 되고 자신을 반성하게 된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극심한 언어 검열 및 소수자와 다수자로 나눠어 양극에서 대립하게 되는 분열을 가져오는 것처럼 느껴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그 정도에 있어서 두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자기 진영을 살피는 게 맞다고 느낀다.

또한 나는 실질적인 소수자들을 위해서는 소수자들이 이러한 계층 구조에서 능력에 의해 상위 포지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역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봤었다. 이에 대해 이번 책을 읽으면서 조금 충격적으로 공감하게 된 부분이 있다. 바로 집단 정체성을 만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소수자가 아닌 지배층이라는 점과 소수자들에게 불리한 정체성을 떠넘겼다는 사실을 지배층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자신이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감 및 불안감은 사실 남성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특정 범죄자의 범행을 남성 전체에게 떠넘기는지 또한 개인과 개인 간의 범죄를 혐오 범죄 확대 해석하는지에 대해 반론을 가한다면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범죄 외에도 부적절한 행동으로 전반적인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받아온 정체성 떠넘김이 아직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모두 인지하고 예방하려 노력할 필요를 느낀다.

'정치적 올바름'은 그 나름대로 개인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고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면 좋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조던 피터슨이 말한대로 모두가 속할 거대한 대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의 시대

마지막 논평에서 '포퓰리즘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정치적 올바름'를 말한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포퓰리즘에 대해 정리를 해보면,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이다. 즉, 엘리트 특권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반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소통의 형태인 것이다. 정치가들이 종종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라는 단어를 경멸적인 의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말을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이 아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국민들과 공감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선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논평에서는 현 시대의 포퓰리즘 현상의 원인으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언급한다.

포퓰리즘 현상의 원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경제적 설명인 불평등과 제조업의 몰락 또는 반대쪽이 말하는 백인 남성들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차별의식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나, 그때는 기존 정치를 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갈등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과도한지 아닌지는 개인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뿐만 아니라 논평에서는 미디어, 세계화, 국제화된 대립 등을 말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말한다. 이제는 힘들어서 다 적지는 못하겠지만, 두고 두고 읽으면서 시대적 변화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좋은 글이다. 무의식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노력하고 더욱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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